성형칼럼
身醫不二(신의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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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압구정필
조회 808회 작성일 02-11-06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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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지난 여름 저녁 식사중에 뇌사판정을 받은 모 인기 TV탤런트의 장기 기증 소식은 소나기와 같은 청량감을 주었다. 삶을 이별한 것도 서러운데, 죽은사람 장기를 떼어 남에게 준다는 것은 자신이나 혈육으로서 힘든 결정을 내렸다는 높은 뜻에 찬사를 보내는 것이다. 신장, 안구, 간 등 장기이식을 받고자 하는 환자수는 엄청나게 많은데 비해 선뜻 제공하려는 사람은 적은게 오늘날 우리 한국의 현실이다. 각막을 외국에서 수입해 들여와 이식한다는 소식은 이미 뉴스가 아니다. 간질환으로 사경을 헤매던 환자가 국내에서는 간을 구할 수 없어 어마어마한 외화를 써 가며 외국에 가서 이식을 받고 돌아오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헌혈 인구도 점점 감소하여 이대로 가다가는 혈액도 수입에 의존해야 할지 모른다. 우리가 언제부터 얼마나 잘 살길래 먹고 입고 쓰는 것 대부분을 외국것을 갖다 쓰고, 입고 먹으며 심지어 인체의 장기까지도 외국 것을 써야 한다는 말인가.
「몸을 손상하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라는 유교사상에 뿌리 깊이 젖어 살아온 우리다. 내 몸 귀하게 여기는 것만이 효도이고 남의 몸을 위하는 일은 효도가 아니라는 뜻은 아닐테지만 어쩐지 씁쓸하다. 아니면 利他가 곧 利己라는 깊은 뜻을 알고는 있지만 나만은 장기이식을 요하는 그러한 처지에 놓이지 않을 거라는 건강에 대한 자신감과 자만 때문일까.
먹거리는 身土不二를 강조하면서 몸의 일부는 외국제를 수입하여 산다면 뭔가 앞뒤가 바뀌어도 한참 바뀌었다.
금년에도 일부 의대에서는 사체가 모자라 백여명의 학생이 단지 사체 1구만을 놓고 눈으로만 해부학 실습을 하였다 한다. 이런 추세라면 해부학 실습도 불원간 중단할 수 밖에 없으리라. 4~5명이 1구를 배당받아 1년동안 직접 해부하며 공부하여도 모자라는 것이 너무나 많음을 느끼며 지내온 우리 세대는 요즈음에 비하면 차라리 다행인가. 직접 해부하여 의학 지식과 수련을 쌓지 못하고 단지 어깨 너머로 남이 해부하는 걸 구경(?)만 하여 눈으로만 배운 의사에게 선뜻 내 몸에 수술칼을 대도록 맡길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사람이 있을논지.
자신의 사체를 기증하기는 죽도록 싫고 사체가 없어서 해부학 공부가 제대로 안된 의사에게 수술 받는 건 더더욱 싫다면 그야말로 이기주의의 극치가 아니고 무엇일까.
모 유명인사나 뜻있는 의대 교수가 시신을 기증하였다 하여 언론에 대서특필되는 사회가 과연 잘 돌아가는 사회일까 (서구사회에서는 통상적인 일인데.) 이대로 간다면 사체도 외국에서 수입하여야 해부학을 공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누가 이를 부인하겠는가.
먹는 것에 있어서 身土不二 해야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 농민들을 위해서이며 또한 우리 땅의 농산물이 우리 몸에 잘 맞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외국인의 몸 일부에서 떼어낸 조직이 우리 몸에 안 맞으리란 것은 이제 상식도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몸 일부를 우리 형제, 자매, 동포의 것이 아닌 외국인의 것을 사다 쓰는 것은 身土不二와는 상관없다는 말인가. 외국 농산물이 우리몸에 안 맞을진대 우리형제, 자매 동포가 아닌 외국인으로부터 장기를 이식받으면 면역 거부반응이 얼마나 심할 것인가는 말할 필요도 없다. 사체만 해도 그렇다. 외국인과 다른 한국인인데 내부야 오죽하겠는가. 세부적으로 해부하다 보면 종종 엄청난 차이를 발견하곤 하는데 수입 사체로 수련한 의사에게 내 귀중한 몸을 누가 함부로 맡기겠는가. 내 몸 귀한 줄만 알지 남의 몸 귀한줄 모르는 것이 진정한 유교사상은 아닐 것이며 身土不二도 아닐진대 요란한 박애정신 운운할 것 없이 자연스레 장기도 기증하고 사체도 기증하는 풍토가 조성되는 것이 시급하다.
돌아가신 후에도 망자의 시신을 잘 돌보고 그의 뜻을 기리는 일은 우리 동양사회의 미풍양속이다. 그러나 살아생전 잘해주고 효도하는 것이 더욱 큰 덕목이지 생전에는 괴롭히고 불화하고 불효하던 주제에 죽은 후 시신만 잘 모시고 명당에 모시는 일이 어찌 우리 윤리의 본 뜻이겠는가.
나는 남에게서 헌혈 또는 장기이식 등을 받지 않고도 잘 살수 있으니 남에게 주지도 않는다는 극도의 이기심, 생전에 잘 못하여도 사후에 망자를 잘 모시면 복 받는다는 터무니없는 욕심, 사체가 모자라 해부학 공부를 제대로 못한 의사에게 수술받기는 싫은데 자신의 시체를 기증하기는 싫은 이기심, 외국인 사체로 공부한 의학지식이 한국인에게 정확히 맞기를 원하는 욕심, 선진화를 위해 숨가쁘게 살아온 우리가 이제는 이러한 이기심, 욕심을 버려야 진정한 선진국 사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몸을 손상하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라는 유교사상에 뿌리 깊이 젖어 살아온 우리다. 내 몸 귀하게 여기는 것만이 효도이고 남의 몸을 위하는 일은 효도가 아니라는 뜻은 아닐테지만 어쩐지 씁쓸하다. 아니면 利他가 곧 利己라는 깊은 뜻을 알고는 있지만 나만은 장기이식을 요하는 그러한 처지에 놓이지 않을 거라는 건강에 대한 자신감과 자만 때문일까.
먹거리는 身土不二를 강조하면서 몸의 일부는 외국제를 수입하여 산다면 뭔가 앞뒤가 바뀌어도 한참 바뀌었다.
금년에도 일부 의대에서는 사체가 모자라 백여명의 학생이 단지 사체 1구만을 놓고 눈으로만 해부학 실습을 하였다 한다. 이런 추세라면 해부학 실습도 불원간 중단할 수 밖에 없으리라. 4~5명이 1구를 배당받아 1년동안 직접 해부하며 공부하여도 모자라는 것이 너무나 많음을 느끼며 지내온 우리 세대는 요즈음에 비하면 차라리 다행인가. 직접 해부하여 의학 지식과 수련을 쌓지 못하고 단지 어깨 너머로 남이 해부하는 걸 구경(?)만 하여 눈으로만 배운 의사에게 선뜻 내 몸에 수술칼을 대도록 맡길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사람이 있을논지.
자신의 사체를 기증하기는 죽도록 싫고 사체가 없어서 해부학 공부가 제대로 안된 의사에게 수술 받는 건 더더욱 싫다면 그야말로 이기주의의 극치가 아니고 무엇일까.
모 유명인사나 뜻있는 의대 교수가 시신을 기증하였다 하여 언론에 대서특필되는 사회가 과연 잘 돌아가는 사회일까 (서구사회에서는 통상적인 일인데.) 이대로 간다면 사체도 외국에서 수입하여야 해부학을 공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누가 이를 부인하겠는가.
먹는 것에 있어서 身土不二 해야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 농민들을 위해서이며 또한 우리 땅의 농산물이 우리 몸에 잘 맞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외국인의 몸 일부에서 떼어낸 조직이 우리 몸에 안 맞으리란 것은 이제 상식도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몸 일부를 우리 형제, 자매, 동포의 것이 아닌 외국인의 것을 사다 쓰는 것은 身土不二와는 상관없다는 말인가. 외국 농산물이 우리몸에 안 맞을진대 우리형제, 자매 동포가 아닌 외국인으로부터 장기를 이식받으면 면역 거부반응이 얼마나 심할 것인가는 말할 필요도 없다. 사체만 해도 그렇다. 외국인과 다른 한국인인데 내부야 오죽하겠는가. 세부적으로 해부하다 보면 종종 엄청난 차이를 발견하곤 하는데 수입 사체로 수련한 의사에게 내 귀중한 몸을 누가 함부로 맡기겠는가. 내 몸 귀한 줄만 알지 남의 몸 귀한줄 모르는 것이 진정한 유교사상은 아닐 것이며 身土不二도 아닐진대 요란한 박애정신 운운할 것 없이 자연스레 장기도 기증하고 사체도 기증하는 풍토가 조성되는 것이 시급하다.
돌아가신 후에도 망자의 시신을 잘 돌보고 그의 뜻을 기리는 일은 우리 동양사회의 미풍양속이다. 그러나 살아생전 잘해주고 효도하는 것이 더욱 큰 덕목이지 생전에는 괴롭히고 불화하고 불효하던 주제에 죽은 후 시신만 잘 모시고 명당에 모시는 일이 어찌 우리 윤리의 본 뜻이겠는가.
나는 남에게서 헌혈 또는 장기이식 등을 받지 않고도 잘 살수 있으니 남에게 주지도 않는다는 극도의 이기심, 생전에 잘 못하여도 사후에 망자를 잘 모시면 복 받는다는 터무니없는 욕심, 사체가 모자라 해부학 공부를 제대로 못한 의사에게 수술받기는 싫은데 자신의 시체를 기증하기는 싫은 이기심, 외국인 사체로 공부한 의학지식이 한국인에게 정확히 맞기를 원하는 욕심, 선진화를 위해 숨가쁘게 살아온 우리가 이제는 이러한 이기심, 욕심을 버려야 진정한 선진국 사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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