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형칼럼
환자가 믿어야 할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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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압구정필
조회 814회 작성일 02-02-22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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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임상에서 僞藥(약리작용은 없으나, 다만 환자의 정신적 위로를 위해 투여하는 약: Placebo)을 투여하여 환자가 치료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이는 위약의 효과라기보다 환자의 심리적 정신적 안정에 의한 효과 때문이다. 즉 나를 치료하기 위해 전심전력을 쏟고 있는 친절하고 훌륭한 의사가 준 약이기 때문에 복용하면 반드시 쾌유된다는 환자의 확신이 실제로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고 진짜 쾌유까지 시킬 수 있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병원에 가면 병이 낫는다는 확신, 주치의가 지시한대로 따르면 반드시 병이 나으리라는 믿음, 이러한 것이 예상을 초월하는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어 때로는 주치의도 놀라게 된다.
의사의 천국이라는 미국에서 외과의를 하는 친구의 얘기다. 교통사고로 사망직전에 이른 환자를 장시간 수술 끝에 성공, 살려냈는데 X레이 사진을 보니 복부에 붕대가 들어 있었다. 고민 끝에 환자와 보호자를 만나 사실대로 실토를 하고 죄송하다고 용서를 빌 수밖에 없었다.
묵묵히 듣고 있던 그들은 『인간이기에 완전할 수가 없을 것이고 따라서 실수할 수도 있는데 걱정 마시오』하고 오히려 친구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그후 그 환자는 붕대를 빼내고 완전한 건강을 되찾았다.
일부 비관론자들은 요즘을 불신의 시대라고 한다. 친구가 친구를, 상사와 부하가, 스승과 제자가, 심지어 부모와 자식이 못 믿는 불신의 사회에서 유독 의사와 환자 사이의 신뢰를 논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요즘들어 의료시비와 분쟁이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것도 현실의 한 단면일 것이다. 실제로 환자 측에서는 만족스러운 치료가 되지 않으면 담당의사가 잘못 치료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부터 하는 사람이 결코 적지 않은 것 같고, 때문에 의사측에서는 좀더 과감한 치료가 필요한데도 불구하고 혹시 발생할지 모르는 의료사고를 의식하고 소극적인 진료를 행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된다면 큰일이다. 손해보는 쪽은 환자뿐만 아니라 불신 받는 의사도 마찬가지다.
불신풍조가 의료계에까지 만연되었음을 탓하기 전에 왜 이렇게 되었나 생각하자. 우선 의료인부터 스스로 그 원인을 찾아 고쳐나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모든 제도를 환자위주로 전환하여 환자들의 불편을 최소화하는 것을 넘어서 편안하게 해주어야 하며, 병원에 갈 생각만 하여도 머리가 지끈거리고 문턱에 들어서면 없던 병도 생길 것 같은 병원이여서는 안된다. 병원에 갈 생각을 하면 마음부터 놓이고 그래서 병원 문턱을 밟기만 해도, 주치의 얼굴만 봐도 반쯤치료가 된듯한 기분을 갖도록 해야한다.
환자도 의사를 믿는 마음부터 가져야 한다. 의사가 그야말로 최선을 다하고 노력하였다면 피할 수 없는 합병증 또는 현 의학으로서 예기치 못한 결과가 나타나더라도, 작은 실수 하나도 용납되지 않는 것이 의료계이지만 진정으로 최선을 다한 의사를 너그럽게 봐주고 박수를 보낼 수 있는 여유 있는 환자의 마음이 의사로 하여금 분발하고 치료에 힘을 기울이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나를 치료하는 의사를 믿고 나의 치료를 위해 고심하는 의사를 이해하려들면 빨리 회복하고 좋은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최근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이 마련 중에 있다고 한다. 너무 늦은 감이 있지만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분쟁이 발생한 후 법으로 시시비비를 가리기 보다는 사전에 의사와 환자가 서로 신뢰를 가지고 치료에 임할 때 보다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병원에 가면 병이 낫는다는 확신, 주치의가 지시한대로 따르면 반드시 병이 나으리라는 믿음, 이러한 것이 예상을 초월하는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어 때로는 주치의도 놀라게 된다.
의사의 천국이라는 미국에서 외과의를 하는 친구의 얘기다. 교통사고로 사망직전에 이른 환자를 장시간 수술 끝에 성공, 살려냈는데 X레이 사진을 보니 복부에 붕대가 들어 있었다. 고민 끝에 환자와 보호자를 만나 사실대로 실토를 하고 죄송하다고 용서를 빌 수밖에 없었다.
묵묵히 듣고 있던 그들은 『인간이기에 완전할 수가 없을 것이고 따라서 실수할 수도 있는데 걱정 마시오』하고 오히려 친구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그후 그 환자는 붕대를 빼내고 완전한 건강을 되찾았다.
일부 비관론자들은 요즘을 불신의 시대라고 한다. 친구가 친구를, 상사와 부하가, 스승과 제자가, 심지어 부모와 자식이 못 믿는 불신의 사회에서 유독 의사와 환자 사이의 신뢰를 논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요즘들어 의료시비와 분쟁이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것도 현실의 한 단면일 것이다. 실제로 환자 측에서는 만족스러운 치료가 되지 않으면 담당의사가 잘못 치료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부터 하는 사람이 결코 적지 않은 것 같고, 때문에 의사측에서는 좀더 과감한 치료가 필요한데도 불구하고 혹시 발생할지 모르는 의료사고를 의식하고 소극적인 진료를 행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된다면 큰일이다. 손해보는 쪽은 환자뿐만 아니라 불신 받는 의사도 마찬가지다.
불신풍조가 의료계에까지 만연되었음을 탓하기 전에 왜 이렇게 되었나 생각하자. 우선 의료인부터 스스로 그 원인을 찾아 고쳐나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모든 제도를 환자위주로 전환하여 환자들의 불편을 최소화하는 것을 넘어서 편안하게 해주어야 하며, 병원에 갈 생각만 하여도 머리가 지끈거리고 문턱에 들어서면 없던 병도 생길 것 같은 병원이여서는 안된다. 병원에 갈 생각을 하면 마음부터 놓이고 그래서 병원 문턱을 밟기만 해도, 주치의 얼굴만 봐도 반쯤치료가 된듯한 기분을 갖도록 해야한다.
환자도 의사를 믿는 마음부터 가져야 한다. 의사가 그야말로 최선을 다하고 노력하였다면 피할 수 없는 합병증 또는 현 의학으로서 예기치 못한 결과가 나타나더라도, 작은 실수 하나도 용납되지 않는 것이 의료계이지만 진정으로 최선을 다한 의사를 너그럽게 봐주고 박수를 보낼 수 있는 여유 있는 환자의 마음이 의사로 하여금 분발하고 치료에 힘을 기울이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나를 치료하는 의사를 믿고 나의 치료를 위해 고심하는 의사를 이해하려들면 빨리 회복하고 좋은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최근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이 마련 중에 있다고 한다. 너무 늦은 감이 있지만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분쟁이 발생한 후 법으로 시시비비를 가리기 보다는 사전에 의사와 환자가 서로 신뢰를 가지고 치료에 임할 때 보다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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